《운명이다》(돌베게) -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삶


《운명이다》를 읽기 시작했다. 정치인으로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인물, 대통령 당시에는 참 욕많이 먹고, 나 자신도 욕을 많이 했던 인물, 하지만 임기가 끝나고 시골로 내려와 촌부로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고 본받고 싶었던 인물, 모든 짐을 지고 홀로 떠나려고 하셨던 인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격인 책이다. 

 요즘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냈기에 우선 이 책부터 읽어 보기로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서와 메모, 그리고 측근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완성된 그의 일대기에 관한 책이다.

 대부분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전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의 인생에서 정말 일부분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이기전에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적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곳에 출마를 했었던 국회의원이었고, 노동자들을 위해 힘썼던 인권변호사였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무조건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사람, 혹은 노무현의 '노'자만 들어도 기분이 안 좋아지는 안티 노무현 세력에게도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책인것 같다.




▶ 지도자는 어때야 하는가


"한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는 어떤 품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어떤 식으로 조직에 몸 담고 있는 멤버들에게 충성을 요구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어렴풋이 답을 주는 단락이 있어서 인용을 해본다.

여당의 아성인 대구 동구 보궐선거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기택 대표는 후보의 경쟁력보다 개인적 인연을, 명분보다 계보를 중시하는 공천을 했고 선거에 참패했다. 나는 그에 대한 정치적 신뢰를 접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갈라섰다. 계보원에게 충성을 요구하려면 이익을 챙겨 줘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공정성을 잃는다. 한두 사람을 챙기는 대가로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계보를 챙기고 개인적 이해관계로 사람을 묶어 둔다고 해서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도자는 공정해야 한다. 신뢰, 헌신, 책임, 절제와 같은 덕목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기택 대표와 일하면서 이런 것을 배웠다. 이런 경우를 두고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한다.

-  《운명이다》中 129 페이지 -

  조직을 움직이는 지도자의 카리스마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이익을 나눠주면서 부하와 동료를 움직이는 방법도 일각에서는 좋을 수 있다. 개개인의 특성이 모두 다르고 성격에도 개성이 있기에 그 때 그 때 맞춰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업과 같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서는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을 동일시하여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사회는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대한민국 CEO라고 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보다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의무가 있는 자리이지, 대한민국이 외국에 장사를 잘 해서 돈을 더 많이 벌어오게 하는 자리가 아니다. 게다가 국가적인 사업을 통해 개인적인 이익을 실현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 때문에 공직자와 정치인은 사업가의 마인드를 가지고, 이익을 나눠주면서 충성을 요구하면 안되는 것이다.
마지막 줄의 "신뢰, 헌신, 책임, 절제와 같은 덕목"이 이익을 나눠주는 것보다 더 강력할 것이다.




▶ 정의란? 권력이란?


이전에도 포스팅 한적이 있는 정의에 대한 내용, 권력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씨는 원래 서로가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관계였다. 이회창 씨는 대쪽이라는 이미지로 김영삼 대통령의 초법적 국정운영에 반기를 들어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이 절묘하게 타협을 한 것이다. 그 두 사람으로 하여금 손을 잡게 만들었던 것은 대구와 충청도의 이반이었다.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조선 건국 이래 600년 역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정권 교체가 없었다. 권력의 편에 서야만 비로소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역사였다. 권력에 맞섰던 사람 가운데 패가망신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손들의 앞길까지도 막아 버렸다. 적어도 무사하게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권력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시비를 가리지 말고 납작 엎드려 살아야 했던 기회주의 역사가 무려 600년이었다. 결국 이회창 씨도 조순 씨도 권력에 줄을 서야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쪽으로 간 것이 아닌가.

-《운명이다》中 140 ~ 141 페이지 -

 정치판을 보게되면, 절대적인 진보와 절대적인 보수를 유지하는 정치인들이 매우 드문것으로 생각된다. 자신의 소신과 가치관을 갖고 정치를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박쥐처럼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 하는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발언을 뒤집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서 어제 뜻을 함께 했던 사람이 오늘의 적으로 갈라 설 수도 있는 곳이 정치판인것 같다. 정치라는 것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정치인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 당적을 바꾸고, 새로운 당을 창당하는 일을 많이 보아왔다. ( 혹은 보고 있다 )

 소신이 없는 기회주의적인 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경우, 혹은 국회의 다수를 차지 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개인의 상상에 맡기겠다. 다만 그것이 결코 좋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정의를 말하지 않는 사회>라는 글에서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문과 비슷한 내용이 책의 본문에 등장한다. "조선 건국이래 600년 역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정권 교체가 없었다. 권력의 편에 서야만 비로소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역사였다. 권력에 맞섰던 사람 가운데 패가망신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손들의 앞길까지도 막아버렸다. 적어도 무사하게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권력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시비를 가리지 말고 납작 엎드려 살아야 했던 기회주의 역사가 무려 600년이었다." 라는 부분,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진 말이다.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남긴 교훈중에 가장 흔하고, 가장 많이 받아들여진 것이 "모난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라는 것입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 정도로, 돈 걱정 없이 살정도로만 성공하면 된다. 괜히 나서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을 합니다.

 이런 생각이 요즘들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욕이 참 좋은 술안주였다. 아닌걸 알면서도 원망할 사람이 없어서 대통령을 욕했고,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노무현은 무얼 했단 말인가"라는 유머까지 생기기도 했따. 대통령은 권위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즘 대통령을 욕하면 얼굴에 빨간칠을 한다. 술자리에서 대통령을 씹기 전에 주변부터 둘러본다. 블로그와 트위터에 대통령 욕을 하면 유해매체로 등록되어 도태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





▶ 촌부 노무현


 나는 정치인 노무현을 모른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국회에 있을 때,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공차고 놀고, 우주에 대해 탐구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또 한 대통령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이회창을 응원했다.( 내 고향 강원도는 당시에 한나라당 표 밭이었고, 가족들도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상황이었고, 그냥 파란색이 좋아서 그랬었다. 지금은 노코멘트!! )

 하지만 인간 노무현은 왠지 그냥 좋다. 재임시절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 "야~ 기분좋다" 한마디로 임기를 끝내시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사는 모습. 내가 알기로 그런 모습의 전 대통령은 없었다. 그 때까지 전 대통령은 권력의 정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정치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원로의 모습이었다.

 전 대통령 노무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고향인 봉화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인생을 택했다. 대통령일때도 친근한 이미지였는데, 이제 시골 동네 할아버지의 이미지로 돌아온 것이다. 인터넷에 떠 돌아다니는 노무현의 사진 중에 귀향한 뒤의 사진들이 난 너무나 마음에 든다.

 마을에서 친환경 오리 농법을 도입하고, 마을에 흐르는 개울인 화포천을 청소하고, 산림을 잘 가꾸는 모습은 전 대통령이라는 권위보다는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살고자 하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젊어서 열심히 고생해서 살고, 나이 들어 귀향해서 욕심부리지 않고 농사지으면서 편안히 사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고자 했던게 아닐까?




▶ 마지막으로 본 세상


 책의 마지막 단락이다. 다들 알다시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라는 곳에서 몸을 던지셨다. 그 과정이 소설처럼 쓰여 있다. 이 부분을 차마 읽을 수가 없었다. 읽다가 책을 접고, 읽다가 접고 몇 번을 접은 끝에 겨우 읽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의 내용도 나와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운명이다》中 334 페이지 -

혹자는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은 유서의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책을 발행 하기 위해서도 심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삭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요즘들어 거짓말이 온 세상에 판을 치고 있다. 진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세상인 것 같다.

 아무튼 여기까지가 그의 인생이었다.

사람사는 세상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

반칙과 특권이 결국은 지는 세상

있는자보다 서민과 대중을 위하는 세상

바보라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치인 노무현은 죽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노란색 비가 되어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싹을 뿌렸다. 그 싹은 앞으로 10년, 20년 아니 앞으로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가 그렸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싹을 틔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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