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빨리도 좋지만, 감동적인 사진 한장



배달 음식 많이 시켜 드시죠?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외식을 하기엔 귀찮고, 나가면 사람들에 치이기도 하고, 지금 당장 할일이 많은데 밥먹을 시간이 아까울 때, 음식을 시켜 먹는게 가장 좋은 대안입니다. 특히나 비가 오는 날이면 배달음식 정말 많이 시켜들 드시지요.



하지만 배달음식이 제 시간에 안 오거나 조금만 늦어 지면 짜증을 내고, 재촉 전화를 계속 해 댑니다. 바빠 죽겠는데.. 밥 빨리 먹고 일해야 하는데, 밥이 안온다고 불평을 하기 일쑤이지요.

그에 맞추어 일부 피자 업체는 30분 배달 보증제를 하기도 했습니다. ( 물론 맛있는 피자는 만들어서 바로 배달이 되는 것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빨리 먹고 싶은 고객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을까요? )

그러다가 배달부들의 사고가 잇따르게 되었지요. 정말 오토바이타고 배달하시는 분들보면 빛의 속도로 달립니다. 지나가다 보면 정말 위험하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구요. 실제로 제가 목격한 배달사고만 1년동안 3,4 건 됩니다. 그 중엔 엠뷸런스에 실려 갈 정도로 심각한 사건도 있었지요.

며칠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 게시물을 봤습니다.

출처 : 오늘의 유머



참... 저 사진 하나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네요. 늦게 와도 괜찮으니 오토바이 사고 안 나게 조심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온 주문.. 배달 하시는 분들이 보고 얼마나 훈훈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실지... 하지만 저는 참... 많은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배달음식 시켜먹을 때,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마디씩 해드려야겠네요. ^^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아십니까? 당연히 우리의 조국, 우리가 살아가는 국가이기 때문에 알지요.
 하지만 우리나라가 어떤 역사를 걸어왔고, 전쟁 중에 얼마나 많은 국가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며 전후 국가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는 알지 못 합니다.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에 대한 게시물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원본 보기 : 오늘의 유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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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일보>


한국 전쟁 직후 서울을 방문한

더글라스 맥아더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한국전쟁으로 인해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던 사람.


400만명여명

2008년 현재

강원도, 충청북도, 제주도 사람을 모두 합치고도 50만명이 남는 수.


<어머니가 죽은 줄 모르고 붙어 있는 아이 /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 보관청>

다시는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아내

20만명



네이팜탄에 찢겨나간 어머니의 얼굴,

삼일째 흔들어도 깨지 않는 아버지를 둔 아이,

10만명




공업시설 : 43% 파괴

발전시설 : 41% 파괴

탄광시설 : 50% 파괴



<1959 부산항 부두 / 출처 : 최민식 작가>


세계언론 특파원들이

자국으로 보내는 기사에 결코 빠트리지 않았던 두 문장.


이 나라엔 희망이 없다.


이 나라엔 내일이 없다.



<1950 서울 용산역 부두 / 출처 : 최민식 작가>




아이들은 구걸하고



<1951.수원. 네이팜탄에 맞은 어머니들 /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어른들은 병들었다.



<집단 학살된 사람들 / 출처 : 연합뉴스>





아니, 죽어 있다.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미국  독일  아랍제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호주  덴마크  벨기에  영국  캐나다

스웨덴  이태리  노르웨이  스위스  뉴질랜드

핀란드  스페인  룩셈부르크  그리스  포르투갈  폴란드


그 외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우리는

한국에 유,무상 원조를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향후 100년이내에 원조액을 돌려 받지 못할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정확히 37년 8개월 5일 후














세계 곳곳에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 파르완주 재건사업 / 출처 : 코이카>

아프가니스탄의 한 아이가 태극마크가 달린

가방을 들고 학교에 나타났다.








<방글라데시아 / 출처 : 코이카>



오른쪽 어깨에 태극마크를 단 동양인들이

방글라데시아에 나타났다.

그리고

죽어가던 우리 언니를 살려 냈다.




<에티오피아 / 출처 : 코이카>




에티 오피아에서도




<스리랑카 / 출처 : 코이카>



스리랑카에서도 그랬다.




<태국 지진해일 긴급구호 봉사단 / 출처 : 코이카>

태국에 해일이 몰아 닥쳤다.

어머니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몇일을 울고만 지냈는데

어느날

태극마크를 단 남자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돌아왔다.

그날 밤,

신에게 평생 그 나라의 축복을 빌 것을 약속했다.





<페루 봉사단 / 출처 : 코이카>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한다.

엊그저께는 들판으로 나가 무등을 태워주며

'사랑한다'

는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다.





<탄자니아 농기계 지원 / 출처 : 코이카>

힘든 농사일과 겹친 가뭄으로

항상 한숨만 쉬던 아버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농기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에티오피아 네오 칠드런 센터 급식사업 / 출처 : 코이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한 아이가

놀랍게도 태극기를 그려 교실에 붙였다.

아직은 복잡해서 잘 외울 수도 없고

서툰 그림 솜씨지만



이 나라 때문에 점심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네오 칠드런 센터 급식사업 / 출처 : 코이카>

58년전.

에티오피아는 흑인국가로는 유일하게 한국전에 군대를 파견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조그만 나라의 자유를 위해

무려 3518명이라는 군인을 파견했고

그들의 소중한 아버지이자 아들

657명이 이 땅에 뼈를 묻었다.



참전 이후 에티오피아에는 공산정권이 들어섰고

참전용사들은 단지 공산국가와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연금이 끊기고 직장에서 쫒겨났다.


전쟁 때 팔 다리,

아버지, 아들을 잃은 고통도 모자라

아직도 그들은 죄인처럼 살고 있따.


그런데

일전에 방송에 나온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인터뷰에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비록 온몸에 총탄이 박히고 팔, 다리를 잃었지만

자유를 위해 싸운 자부심으로 한 평생 살아왔습니다.

가난과 고통, 멸시가 대물림 되어

자식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고 있지만

한국이 발전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흐뭇합니다."




그는 아직도 참전당시의 태극기를 고이 보관하며

날마다 태극기를 게양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잘 살게 되었지만

우리를 도운 그들은 아직도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도울 때다.

대한민국의 기적은 그들과 함께 잘 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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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60년대를 보십시오.
한강의 기적은 우리 손으로만 이룬게 아닙니다. 지구촌 여러 국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만큼 잘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겐 남아 도는 쓸 모 없는 물건들도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에선 소중한 물건이 될 수 있습니다. 길가다 사먹는 아이스크림 1000원으로 그 나라 아이들은 하루를 먹을 수 있습니다. 꼭 기부, 봉사를 하지 않아도 그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도움의 손길을 잊지 않고 고마움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을 때, 한강의 기적은 비로소 완성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전세계에 손을 뻗을 때입니다..

 이 그 읽고 살짝 울컥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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