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피천득 - 바쁜 걸음의 연속인 일상에 작은 휴식


오랜만에 수필을 읽었다. 소설, 자기계발 같은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수필 집을 읽고 있으면 시간이 촉박하지 않아서 좋다. 내가 읽고 싶은 만큼만 읽고 쉬었다가 시간이 나면 다시 읽을 수 있는 장르가 수필집이다. 소설이라면 오래 동안 안 읽거나 너무 바쁘면 다시 스토리에 빠지기 위해서 워밍업이 필요할텐데, 그런면에서 수필이야말로 바쁜 현대인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아니겠는가.

하물며 이런 수필집에 담겨있는 수필하나하나가 주는 잔잔한 감동, 느낌이 좋다면 더욱 더 좋은 수필집이라 할 수 있다. 오랜만에 '은은함'이 느껴지는 수필집을 만난 것 같다. 바로 작가 피천득의 《인연 因緣》이라는 수필집이었다.





수필에 대한 매력, 《인연》이라는 수필집은 수필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로 시작한다. 수필이란 무엇이며,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작가의 솔직한 생각이 담겨 있는 글이다.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언제나 찰스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 《인연》中 <수필> 18 페이지 -

  마음의 장벽이랄까,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글을 읽는 입장에서도 가장 부담이 적은 장르가 수필일 것이다. 수필로 쓰여 질 수 있는 재료는 우리의 일상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가 주제가 될 수도 있고, 매일 아침 아무의미 없이 출근해서 책상에 앉는 반복적인 루틴이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건 그런 글감에 대해 얼마나 솔직한 자세를 취하느냐, 얼마나 색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느냐가 될 것이다.

사실 글 잘 쓰는 사람들의 특징이란게 같은 장면, 같은 상황을 접하더라도 일반 사람들과 색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관찰력'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작가를 작가로서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수필이라는 장르를 다시 한번 좋아하게 된 글이었다.




이 책에 담긴 수필 중에 <모시>라는 작품이 있다. 자연적인 것이 실종되어 가는 우리 삶을 말하고 있는 글이다. 자연 적인 것은 전부 어디가고 우리 주변엔 점점 '인조人造'라는 말이 붙은 것들이 너무 많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는 보석도 광산에서 채취한 원석이 아니라 사람이 인위적으로 압력을 가해 만든 원석으로 가공한 인조 보석이 나오고 있고, 심지어 사람의 손톱도 인조 손톱이 나오고 있다.

 작가는 여기서 모시와 함성 섬유인 나일론을 비교했다. 나일론이 가짜라고 한다면, 진짜는 모시가 된다. 나일론이 땀도 흡수 못 하고 공기도 잘 안통하는 가짜 섬유라면 모시는 시원하게 통풍이 잘되는 진짜 섬유인 것이다.

필요에 의해서, 편의에 의해서 라고는 하지만 점점 가짜가 진짜를 대신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을 대하는데 있어서 진짜 자신의 모습은 뒤로 감추고 '처세술'이니 뭐니 해서 가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힘겹게 들고 다니는 것 같다. 가짜 자신의 모습은 땀이 차도 바람이 통하지 못해 입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나일론과 같아서 점점 진짜 자신을 힘들게 만들 뿐이다.

가짜로 대체되어 가는 진짜들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진실함이 필요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생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결혼 기념일 선물 등등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으면서 '선물'이라는 것을 해야 할 상황이 굉장히 많이 있다. 선물을 주고 받을 일이 갈 수록 많아져서 일까? 선물의 의미가 상징적인 의미에서 실질적인 의미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다.

선물의 값어치를 따지게 되고, 대가성 선물이 오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선물을 선물로 생각 할 수 없고, 부담으로 생각 해야 하는 세상. 얼마나 매력없는 세상인가.

선물은 뇌물이나 구제품같이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태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선물은 포샤가 말하는 자애慈愛와 같이 주는 사람도 기쁘게 한다. 무엇을 줄까 미리부터 생각하는 기쁨, 상점에 가서 물건을 고르는 기쁨, 그리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 인편이나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에는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상상하여 보는 기쁨, 이런 가지가지의 기쁨을 생각할 때 그 물건이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선물을 받는 순간의 기쁨도 크지마는 선물을 푸는 순간의 기쁨이 있다. 이 기쁨을 길게 연장시키기 위하여 나는 언젠가 작은 브로치 하나를 싸고 또 싸서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더 큰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또 더 큰 상자에 넣어 누구에게 준 적이 있다.

- 《인연》中 <선물> 52 ~ 53 페이지-

선물을 받고 실망한 경우가 있는가? 도대체 무엇을 기대했길래 실망을 하는 것이가.... 선물을 주고 받음에 있어서 대가성이 들어간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 되는 것이다. 선물의 본질... 이 글을 통해서 다시금 알게 되었다.


Chicago Symphony Orchestra, featuring the Marcus Roberts Trio
Chicago Symphony Orchestra, featuring the Marcus Roberts Trio by jordanfischer 저작자 표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두드러지는 소리를 가진 악기가 있다. 예를 들어 피아노 혹은 바이올린이 그런 악기가 될 수 있다. 반면 두드러지는 소리의 악기는 아니지만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에 없어서는 안 될 악기들이 있다. 콘트라베이스 같은 악기가 그런 종류이다.

세상은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살아가는 하나의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모든 악기가 자신의 소리를 내기에만 급급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연주는 '망한다'.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해야 하는 오케스트라가 순간 소음을 뿜어내는 소음 제조기가 되는 것이다.

책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지휘봉을 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찬란한 존재다. 그러나 토스카니니 같은 지휘자 밑에서 플루트를 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다 지휘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 콘서트 마스터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 있어서는 멤버가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바 기능이 전체 효과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 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 서로 없어서는 안 된다는 신뢰감이 거기에 있고, 칭찬이거나 혹평이거나 '내'가 아니요 '우리'가 받는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자기의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이 얼마 아니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음無音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인연》中 <플루트 플레이어> 56 페이지 -

뉴스 지면, 텔레비젼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하모니를 잃어버린 악장의 모습이 형상화 된 듯 한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남의 불행을 초래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자행되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다같이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데에 의미가 있다. 세상역시 다같이 행복해 지는데에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 책에는 수필이 적지 않은 수가 담겨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수필의 매력은 쉼표가 있다는데에 있다. 하나하나의 생각이 진솔하게 하나의 글로 엮여 있고, 그 글들을 읽음에 있어 별다른 워밍업이나 몰입도가 필요하지 않다.

자기계발서만 읽는 요즘 학생, 직장인들에게 권하기를 수필같은 글도 읽어 생각의 깊이를 발전시키기를 바란다!!! 세상은 기술로 사는게 아니라 철학으로 사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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